읽쿠의 자존감 향상 에세이(2)
| 원칙과 권리를 주장할 때
SNL 코리아에서 MZ세대의 말버릇을 따라 하는 게 한창 유행이었다. 그중에서도 습관처럼 '죄송하지만~'으로 시작하는 말을 패러디한 모습은 현실을 200%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말버릇이 여러 콘텐츠로 패러디된 지 꽤 오래되었지만, 나는 최근이 되어서야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단순히 말버릇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실 이 말이 나의 자존감도 낮출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지난 4월, 퇴사를 하고 이리저리 회사를 알아보다가 백수 기간이 좀 길어질 것 같아서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점심시간 피크타임 알바였고, 주문은 대부분 키오스크에서 이루어지기에 홀서빙과 배달·포장만 잘 신경 쓰면 되는 일이었다.
사장님이 내게 당부한 것은 딱 세 가지.
1. 홀에 자리가 있던 없던 점심시간 포장손님은 반드시 밖에서 대기할 것.
2. 11시 20분 부터 12시까지는 1인 손님을 절대 받지 말 것(가게 문 앞에 안내문이 붙어 있음)
3. 반찬 리필은 딱 한번 뿐이며 많이 달라고 하는 손님에게는 사서 드시라고 할 것.
사장님이 당부하신 이 세가지는 내가 해야 할 일이라기 보단, 손님에게 이 가게에서 지켜야 할 것들을 알려주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안내만 하면 되고, 불편한 상황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사장님의 당부를 이행하는 것은 내가 이 가게에서 하는 일 중 가장 어렵고 불편한 일이 되어버렸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피크타임인데도 포장손님들은 주문 직후 대부분 자연스럽게 홀에 앉아서 대기 하려고 했다. 손님이 많지 않아 그냥 두려고 하니, 사장님은 이렇게 한 분 두 분 예외를 적용하면 나중에 더 큰 불평이 온다며 밖으로 안내하라고 하셨다.
가게 특성상 1인 손님이 적지 않게 오는 곳이었지만 12시 전에는 무조건 포장만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해야 했다. 홀에 자리가 많아도 예외 없이 무조건 12시까지 대기를 해야만 한다고 하니 손님은 굳어진 표정으로 포장을 하거나 가게를 나가버렸다. 두 번, 세 번 반찬을 많이 좀 달라고 하는 손님에게 원가에 포함되기 때문에 두번 리필은 안된다고 했더니, '이게 얼마나 된다고~ '하며 치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이 불편했다.
"손님. 죄송하지만 포장이실 경우 밖에 의자에서 대기 부탁드립니다."
"손님, 죄송하지만 1인 손님은 12시부터 식사 가능하십니다."
"손님 죄송하지만 반찬 리필은 1회만 가능하십니다."
매번 정중하게 안내 했다고 생각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평은 기본, 심한 경우 화를 내기도 했다.
'자리가 남아있는데 12시부터 오라고요?', '자리 많은데 밖에서 기다려요?' 등 안내를 따르지 않고 오히려 따지는 손님도 많았다. 이럴 때마다 매번 죄송하다고 답했더니, 보다 못한 사장님이 결국 나를 불렀다.
'왜 네가 죄송하니. 피크타임 관련 안내는 모두 붙여놨고, 이건 우리 가게 이용을 위한 원칙을 알려주는건데.
자꾸 죄송하다는 말을 하면 다들 우리가 진짜 잘못한 건 줄 알잖아. 죄송하다는 말 하지 말고 안내해. 뭐라고 하는 손님은 입구에 안내문 다 붙여놨다고 말씀드려.'
그렇지. 객관적으로 봤을 때 사장님과 내가 죄송할 일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나는 왜 자꾸 죄송하다고 말하는 걸까?
<무엇이 그렇게 죄송할까.>
생각해 보니 별 것 아닌 일인데도 하루에 대여섯 번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물건을 빌리는 등의 신세를 질 때는 당연히 죄송하다는 말을 붙일 수 있지만, 오히려 나의 권리나 조직의 원칙을 이야기할 때마저도 상대에게 죄송하고 있었다. 왜 나는 항상 죄송할까, 무엇이 그렇게 죄송할까. 고민해 보니 나로 인해 상대가 조금이라도 불편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원칙에 반하거나 나에게 피해가 되는 것을 요청받을 땐 내가 거절함으로써 상대의 기분이 불편해질 것 같았고, 나의 당연한 권리를 요청할 때도 내가 요청함으로써 상대가 불편해질 것 같은 것이다. 되돌아보면 상대의 불편을 걱정하는 것은 지나친 배려였다. 어느 순간부터 죄송하다는 말이 습관처럼 붙기 시작하면서 나는 언제나 상대에게 낮은 자세로 다가가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어떤 사람에게도 미움받고 싶지 않고, 누구에게도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이(어쩌면 욕심이) 죄송하다는 말로 표현되어 나를 점점 작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보다는 감사합니다.
이런저런 불편한 상황을 겪다 보니 조금 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죄송하다'는 표현은 어떻게 보면 정중한 표현일 수 있지만, 또 다르게 보면 상대의 불편을 걱정한 나의 배려가 당연한 권리인 줄로 착각하게 만들 수 있다.
요즘은 사장님의 말대로 불필요하게 죄송하다는 표현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바쁜 점심시간에 안내문을 읽지 않고 들어와 있는 손님에게 포장은 밖에서 기다려 주십시오라고 요청하고, 불평을 호소하는 손님에겐 입구에 미리 안내문을 붙여두었으니 확인하시라고 말했다. 신기하게도 죄송하다는 말을 붙이지 않았을 뿐인데, 손님들은 '아, 그래요?' 하며 빠르게 수긍해 주었다.(물론 그렇지 않은 손님도 있지만) 한껏 자세를 낮추고 손님의 표정과 반응에 전전긍긍하던 나의 모습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상대와 동등한 관계에서 말을 하니 불편하기만 했던 그 모든 상황들이 조금씩 아무렇지 않게 변해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제는 죄송하다는 말 대신, 감사합니다 라는 표현을 쓰기로 했다.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일 순 없으니까.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단번에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기존에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도 항상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개인마다 처해있는 상황과 성격, 생각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내가 하는 행동이 보기 좋은 호의가 될 수도 있고, 불편하거나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내가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느끼는 것이다. 결국 내 것이 아닌, 상대의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마음'의 영역은 마냥 내가 원하는 대로 이끌어 갈 수 없기에 나를 좋아할 사람은 좋아할 것이고, 불편해할 사람은 불편해 할 것이다. 나는 그저 나 자신을 낮추지 않는 선에서 상대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하면 그만이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죄송해하지 말고, 조금만 더 당당해지길.
상대의 눈치 보다 나 자신의 자존감을 살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p.s) 한 두 달만 가볍게 해 볼 생각으로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이렇게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하게 만들 줄이야...!
-2023.07.21. 읽쿠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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