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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기록장

별주부전(토끼와 자라)독후감으로 엄마를 놀라게 했다.[읽쿠의 자존감 향상 에세이]

by 읽쿠 2023. 7. 5.

읽쿠의 자존감 향상 에세이(1) 
| 별주부전(토끼와 자라) 독후감으로 엄마를 놀라게 했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한글, 수학, 독서활동을 직접 가르쳐 주셨다. 그것도 아주 무섭게.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릴 적 나는 이해력이 조금 부족했다. 가르쳐주는 것들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고, 하루가 지나면 금세 까먹어서 엄마의 손에는 항상 회초리가 들려 있었다.(그 시절엔 다 그렇게 컸다.)

엄마 덕분에 갖추게 된 책 읽기 습관

엄마는 그런 내가 조금 더 똑똑해지길 바랐다. 덕분에 내 방 한쪽 벽면에는 위인전 시리즈는 물론, 다양한 세계 명작 소설과 동화책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에 안경을 쓰게 되었는데, 엄마는 그 이유가 밤새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책을 많이 읽어 눈이 빨리 나빠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시절의 내가 책 읽는 것을 정말로 좋아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루는 엄마가 '별주부전(토끼와 자라)'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그 책은 서른이 넘은 지금도 기억날 만큼 파랗고 예쁘게 생긴 책이었다. 

 

별주부전(토끼와 자라) 줄거리

아주 먼 옛날, 바닷속을 지배하고 있던 용왕님이 큰 병에 걸렸는데,  어떤 약을 써도 낫지 않아 모두가 걱정하고 있었다. 용궁의 의원은 육지에 살아있는 토끼의 생간을 먹으면 병이 씻은 듯이 나을 수 있다고 진단하는데,  용왕의 충신이었던 자라가 토끼를 잡으러 육지로 올라가게 된다.

육지에서 자라는  우연히 토끼를 발견하고, 바닷 속에는 엄청난 보물이 많다는 거짓말로 토끼를 유인하는 것을 성공한다. 뒤늦게 자라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된 토끼는 자신의 간이 워낙 효과 좋은 약재로 유명해서 숲 속에 간을 숨겨 놓고 다닌다고 거짓말을 해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시 토끼를 육지로 데려간 자라는 도망가는 토끼를 보며 망연자실한다. 

토끼와 자라 이야기는 책마다 결말이 다르지만, 그때 당시 내가 읽은 책은 도망가는 토끼를 보며 망연자실하는 자라의 뒷모습이 결말이었다. 나는 독후감에 '토끼에게 속고, 용왕에게도 돌아가지 못하는 자라가 불쌍하다'라고 썼다.

엄마는 내 독후감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정말로 이렇게 생각하니?'라고 물으셨다. 그러고는 동화책의 포인트를 잘못 잡고 있다며, 다시 써오라고 하셨다. 아마도 엄마는 '어려운 상황을 유연히 이겨낸 토끼의 지혜를 본받아야 한다'는 둥의 소감을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토끼의 지혜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라의 처지가 더 마음이 아팠는걸.

지우개로 공책을 박박 지우고 뭐라고 써야할 지 몰라 혼자 끙끙 앓다가, 결국 오빠의 힌트를 얻어 엄마가 원하는 답이 적힌 독후감으로 수정했다. 그 후 나는 토끼와 자라 이야기를 더이상 펼쳐보지 않았다.

 

그때는 별주부전 외에도 다른 사람이 보고 느끼는 것을 똑같이 느끼지 못하는 것이 많았기에 그냥 내가 이해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다른 사람이 하나의 사건이나 사물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눈치를 보곤 한다. 내가 가진 생각이 정답이 아닐 것이라는 불확실성이 있었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 직장 생활을 하게 된 지금까지도 나의 눈과 생각을 믿지 못한다. 실제로도 팀원들과 디자인 A, B 시안을 볼 때 내가 B안이 더 예쁘다고 생각면 다른 사람들은 A 안이 더 깔끔하고 예쁘다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생각을 접고 다른 사람과 똑같이 B안을 고르곤 한다. 어릴 적에는 내가 이해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지금은 '감각이 없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디자인과 밀접한 업무를 하고 있는 나로써는 디자이너가 시안을 골라서 쓰라고 할 때 가장 괴롭다.  시안을 하나만 받아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이 선배 대리님에게는 '이게 뭐야?'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그 선배의 의견이 항상 옳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시안을 받고 광고주에게 제작물을 보내기 전에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바쁘다. 혹시나 내가 보는 시안이 다른 사람 눈에는 별로일까 봐, 또는 기어코 수정사항을  찾아내 디자이너에게 요청할 때에도 내 판단이 맞는지 항상 긴가민가하다. 아마 내가 마케팅이 아닌 다른 직종에 있었어도 나는 여전히 자신의 생각과 눈을 쉽게 믿지 못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다른 사람과 비슷한 생각, 비슷한 느낌을 갖고자 노력하는 것은 결국 항상 타인의 눈치를 보면서 산다는 의미이다. 평범한 생각을 하고, 기본적인 감각은 갖춘 사람이 되고 싶어서 항상 눈치를 보며 살아왔지만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태도였다. 

1년, 2년 경력을 착실히 쌓으면서도 이것이 다른 사람에 비하면 물경력이라 생각하고,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다고 스스로를 자학한다. 나도 모르게 자존감은 바닥에 떨어져 있다. 하지만 그 자존감이 지금껏 바닥에 있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살아왔다.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도, 지금껏 해온 일을 킵고잉 하는 것도 모두 쉽지가 않다.

 

헤르만헤세의 나무들

얼마 전,  온라인 필사모임에 들어갔다. 책을 읽고 각자가 마음에 드는 문장을 필사하여 채팅방에 인증하는 모임이다. 

그때도 나는 눈치를 봤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문장을 필사했는지 먼저 살펴본 후 내 것을 인증했다. 그런데 그때 한 참여자가 질문을 했다. 

"그냥 다 필사하면 되는 건가요?"

주최자는 "다 하셔도 되고, 각자 마음에 와 닿는 문장도 되고, 그냥 쓰고 싶은 문장을 쓰셔도 됩니다. 자유예요."

주최자의 답변에  참여자들은 각자 서로 다른, 어쩔 때는 같은 문장을 필사하고, 느낌까지 적어 올렸다. 

'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군요'라는 답변이 오가는 것을 보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어쩌면 세상이 무조건 정답과 오답으로 나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느낀 것은 나만의 답이고, 상대가 느낀 것은 상대만의 답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상대의 답이 정답인지 아닌지, 대부분이 그렇게 느끼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당당하게 말하고 표현하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내가 나의 생각에 귀 기울이며 동의할 수 있을 때. 그때쯤이면 나의 자존감도 쑥쑥 올라가 있지 않을까?

 

p.s) 엄마의 독후감 검사로 인해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엄마는 그저 내가 똑똑하고 평범하게 살길 바랐던 든든한 조력자였으니까.  그나저나 내 MBTI는 극 T인데 별주부전 독후감은 왜 극 F 성향이 보일까...

 

-2023.07.05. 읽쿠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