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쿠 추천 : 읽쿠의 출퇴근길을 따뜻하게 만들어준 특별한 연작 힐링소설 :)
읽쿠는 출근길에 소설을 읽는다.
무겁고 어려운 내용보다는 소소하고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현대소설을 주로 읽는다. 특히 출근길이 두렵고 퇴근길이 찝찝한 시기에는 이런 소설이 굉장히 큰 힘과 힐링이 되었다. 앞으로 읽쿠가 종종 소개하는 '힐링형 현대소설'은 대부분 출퇴근길에 홀짝홀짝 읽은 것으로 짐작하면 될 것이다. 혹시나 읽쿠처럼 출근길이 너무나 괴로운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은 힐링소설로 출근길 막간의 힐링타임을 즐겨보시길 추천!
1. 간략한 내용
'여기는 커스터드, 특별한 도시락을 팝니다' 는 도시락가게를 운영하는 주인과 단골손님들의 이야기를 연작으로 엮어낸 소설이다. 현실세계에서도 그렇듯, 이 도시락 가게를 방문하는 손님들은 저마다 엇갈린 인연의 후회와 고민을 안고 살고 있다. 도시락 가게 여사장은 오는 손님마다 포인트가 가득 찼다며 사은품을 주는데, 그것은 마치 방문객의 과거와 고민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마법처럼 특별한 선물이었다. 손님들은 도시락 가게에서 건네받은 선물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고, 지나쳤던 실수를 마주한다.
1장부터 4장까지는 도시락 가게 손님들의 이야기, 마지막 5장은 차갑고 무뚝뚝해 보였던 일종의 츤데레 여사장의 이야기다.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심각하고, 또 다르게 보면 그저그런 싱거운 과거일 수 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들이 과거에 대해 어떻게 회상하고, 고민하며, 어떤 결론을 내어 가는지에 주목하게 되고, 나도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찌릿해지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2. 필사 모먼트
제 1장) 주먹밥 두 덩이 손님
난 뭘 하고 싶은 걸까. 뭘 하고 싶었던 걸까.
생각해 봐야 부질없는 짓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단념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생각해 봐야 부질없는 짓이야.
그래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잃어버린 소중한 존재를.
어쩌면 '단념'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길들인 습관이 아닐까?
내가 무엇을 생각하든 부질없는 짓이 될 바에야 차라리 외면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떠오르는 문장
따분하고 보잘것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는 오늘까지.
내일은 분명 특별한 일이 생길거야.
그동안의 우중충한 잿빛 나날을 뒤바꿀 멋진 사건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앞으로 다채로운 나날이 펼쳐질 거야. 틀림없어.
그런 상상을 하며 잠자리에 든다. 지금까지는 매일 그렇게 생각해 왔다.
기대했다가 배신당하고 늘 같은 희망을 품은 채 만들었다.
아마 그런 나날도 오늘 밤이 마지막이겠지. 틀림없다.
내일은 다른 내가 될 거야. 진심으로.
아침 출근길에 읽으며 나도 함께 다짐했다. "오늘은 다른 내가 될 거야. 진심으로."
제2장) 닭튀김 도시락 손님
왜 나는 엄마의 보살핌을 불편해하는 걸까.
어째서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지. 난 무엇에 반항하고 있는 걸까?
그래도 난 이사자카와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래서였다.
내가 처한 '당연한'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길 바랐다.
엄마가 내미는 '당연한' 손길을 귀찮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격하게 공감하면서 같이 고민하는 부분이다. 바리바리 반찬을 싸서 보내주고, 생일이면 꼭 만나야 하고, 퇴근 시간마다 전화를 주는 엄마의 보살핌이 나는 왜 불편했을까. 도대체 왜 답답하다며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지. 엄마가 내미는 '당연한'손길이 어쩌다가 귀찮아졌을까.
엄마 탓이 아니다. 나 자신의 문제다. 인정하자.
여전히 나는 응석받이일 뿐인 한심한 어린애였다. 인정한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늘 고마워.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카드에 인쇄될 법한 그런 말로밖에는 내 마음을 전달할 자신이 없다.
그러면 엄마는 이렇게 말하겠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미 다 알고 있었단다.]
이 부분에서 눈물 철철... 나의 진정한 독립과, 엄마의 행복을 위해 응석받이일 뿐인 나의 모습을 인정하고, 성장해야만 한다. 엄마의 당연한 손길에 대한 첫마디를 귀찮음이 아닌, 감사함으로 표현하는 연습도 필요하다.
제3장 김 도시락 소녀
"전성기는 짧은 법이야. 하지만 주인공이던 시절은 분명 있었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도 나무로써의 표정은 사계절마다 다양하잖아.
알아봐 주는 사람만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
그렇구나
"다시 봄이 되면 되살아나서 주인공자리를 꿰찰 테니까." 그래 맞는 말이야.
"벚꽃은 정말 근사해"
알아봐 주는 사람만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지만, 나는 알아봐 주는 사람조차 없는 것 같은 기분인걸.
내게 전성기라는 것이 있었을까, 주인공이던 시절이 아직 안 온 걸까. 나는 사람들이 알아봐 주지 않아도 나만의 표정을 사계절마다 표현하고 있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들게 했던 문장들이다.
내 인생, 나의 행복. 손에 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구체적인 방법은 모른다.
그런 상태에서 시작되어 버린 나의 인생. 학교에도 가지 않는다. 친구도 없다. 미래의 계획은 전혀 없다.
우선 오늘 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아무런 계획도 없는 백지상태, 하얀 여백만이 펼쳐진 내 인생.
소설 속 이 생각을 하는 사람은 10대 학생이지만,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직장인들도 백지상태인 것은 마찬가지일 듯.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방법은 몰라도, 어쨌든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내가 참 대견하다. '꾸역꾸역'이 나쁜 단어가 아니라 끈기를 보여주는 단어라고 했던 어느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나던 문장이다. (그래도 10대에 학교는 가야지..?)
(친구를 꼭 만들 필요가 없는 것 같다는 유리에게)
"지금 손님이 느끼고 있는 의문은 옳아요. 친구라는 건 시간의 성과랍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때로는 친밀했다가 또 때로는 소원해지죠.
하지만 역시나 만나고 싶어지고 만나면 즐겁죠.
그렇게 어중간한 상태로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결과적으로는 소중한 관계로 이어지는 거예요.
그런 상대가 진짜 친구겠죠. 적어도 전 그렇게 믿는 답니다.
하지만 말이죠. 그 한 시절을 즐겁게 지내다가 화려하게 해산하는 관계도 그 나름대로 친구인 건 틀림없어요.
유리와는 다르게 나의 10대 시절은 친구가 전부였다. 친구가 많진 않았지만 꼭 단짝 친구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굉장히 컸다. 그래서 학교생활을 더 계산적으로 한 것 같다. 그냥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것도 있지만, '우리는 평생 가야 한다'라는 전제로 항상 질투를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어른이 되고, 서울로 혼자 이사를 왔다. 내 주변에 남은 친구는 다섯 손가락을 다 채우지 못하지만, 소원했다가 친밀했다가를 반복하는 친구가 몇 남아있다. 자주 만나지 못해 아쉽고, 서운했던 감정들은 사라지고 각자의 생활에 치여 때로는 친밀했다가 소원했다가를 반복하며 소중한 관계로 남아있다.
알게 모르게 헤어진 친구들을 이제 만나서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그 나름대로 친구인 건 틀림없다니, 참 속 시원한 말씀이다. 여기서 또 몬스타엑스 형원이 차쥐뿔에 나와서 인간관계에 대하여한 말이 생각난다.
"나는 보는 거와 상관없이 내가 더 마음이 가는 사람에게 했었어"
(엄마 유리아가 딸 유리에게)
"넌 네 인생을 살면서 본인의 행복을 손에 넣어야만 해."
내 인생, 앞날은 백지상태. 하얀 여백뿐이다. 내 인생, 나의 행복.
손에 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구체적인 방법은 모른다. 그런 상태에서 시작 돼버린 나의 인생.
그래, 시작되어 버린 이상 어쩔 수 없다. 평범한 사람이 될 수 없다면 그런대로 움직여 보는 거다.
귀찮긴 하지만. 귀찮더라도 해볼까.
행복해지는 구체적인 방법은 모르지만 지금 내 모습 그대로, 그런대로 움직여보는 것.
처음 유리아의 고민이 딱히 해결된 것은 없지만, 그런대로 움직여보기라도 한다는 것이 굉장히 큰 발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출근을 하고, 일을 하는 게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제4장 택시기사 손님
"어쩌면 신비한 능력이라는 게 그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일 뿐
의외로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아주 어렸을 땐 살이 찌든 몸에 좋든 나쁘든 신경 안 쓴 채 먹고 난 뒤에도 무척 행복했었는데."
그러게요. 어른이 된다는 건 괴로운 일이네요.
어릴 땐 어른이 되고 돈만 있으면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먹는 것조차도 마음대로 먹기 어려운 것이 어른이었다.
제5장 커스터드
엄마에게 자주 이런 말을 들었다.
"이미 끝난 일이야. 단념하렴. 앞을 향해 살아가야지."
하지만 나는 뭐든 쉽게 단념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언제까지고 주춤주춤 꾸물대면서 뒤를 돌아보거나 바닥을 바라보며 주눅이 든 채 움직이지 못했다. 지금도 여전하다.
어쩌자고 그런 말을 해버렸을까.
어제까지의 나날이 내일도 계속될 거라 믿은 걸까. 왜 좀 더 착하게 굴지 못한 거지?
주춤대고 우물우물한 채, 움츠려 든다.
완전 나의 모습이라 공감하는 문장.
1장에서 말하는 단념과 5장에서 말하는 단념은 다르다. 인간관계, 나의 미래의 희망에 대한 단념이 1장이라면, 5장의 단념은 내가 해왔던 일들, 실수들에 대한 단념을 의미한다. 단념을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무엇이든 쉽게 단념하는 게 마냥 좋지는 않지만, 지나간 과거에 대한 후회가 있다면 그 문제를 제대로 마주하고 인정한 후에 단념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된 단념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자신감을 가지렴. 그게 네 능력이란다."
이 책이 나에게 보내는 마지막 격려 문장 :)
3. 완독 소감
읽쿠에겐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옮긴이의 말'까지 모든 것이 좋았던 책이다. 책을 펼칠 때마다 공감받는 느낌이었고,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읽는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작은 순간마저도 용기를 내야 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별나다고 생각하지 말자. 작은 용기가 쌓여서 큰 용기가 되고, 그것이 나의 인생을 만들어 줄 것이다.
지나간 과거와 인연의 기억이 좋지 않다면 한 번쯤은 제대로 마주할 기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 외면하다 보면 숨고, 숨기게 되고 이것이 나도 모르게 자존감이나 쓸데없는 단념으로 이어질 수 있을 테니까.
p.s) 읽는 중간중간 한솥 도시락이 생각날 수 있음
'독서 기록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리뷰] 안녕, 시모키타자와(요시모토 바나나/민음사) (10) | 2023.07.19 |
---|---|
[책 리뷰] 야간비행(생택쥐페리/더클래식) (4) | 2023.07.14 |
[책 리뷰] 모래의 여자(아베코보/민음사) (0) | 2023.07.04 |
[책 리뷰] 위대한 개츠비(스콧 피츠 제럴드/민음사) (2) | 2023.07.02 |
[책 리뷰]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에게(메이븐/김은주) (0) | 2023.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