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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기록장

[책 리뷰] 모래의 여자(아베코보/민음사)

by 읽쿠 2023. 7. 4.

◎ 읽쿠 추천: 처음엔 신선하고, 중간 부분엔 당황하고, 끝을 향해 갈수록 갑갑해지는 신기한 소설

온라인 필사 인증 모임을 통해 '모래의 여자'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얼핏 제목만 봤을 땐 모래사장 주변에 사는 여자일지, 모래로 빚은 여자일지 내용을 통 짐작하기 어려웠다. 소설 내용에 대해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펼쳤기 때문일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답답함이 조여 왔지만 언젠가 책 속의 주인공도 어려움을 극복하겠지 라는 마음으로 (희망을 갖고) 마지막 장까지 페이지를 성실하게 넘겨 보았다. 하지만 '모래의 여자' 이야기의 결말은 없었다.

일반 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모래 바람 속에서 적응해버린 여자, 갑갑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시를 잠시 떠났다가 더 갑갑하고 답 없는 모래 세상에 갇혀버린 남자. 작가는 아마도 두 인물을 통해 갑갑하고 성가신 일이 가득하지만 어딜 가도 피할 수 없었던  현대 사회의 사람들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민음사/ 모래의 여자

1. 간략한 내용

직장에 휴가를 내고 곤충 재집을 나선 남자는 모래가 많은 신기한 마을에 갇혀 하룻밤을 묵어가기로 한다. 이 마을 매일 흘러내리고 바람에 휩쓸려가는 모래로 인해 사람이 살기가 어려운 곳이지만, 주민들은 살기 위해 매일 밤 모래를 치우는 일을 반복한다. 남자는 모래 속에 사는 한 여성의 집에서 신세를 졌지만, 다시는 그 집에서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여자와 주민들이 남자가 모래 마을에 적응해 함께 모래를 치우는 일에 힘써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를 가둬버렸기 때문.

밖으로 올라갈 수 있는 밧줄이 있어야 탈출할 수 있지만,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남자는 결국 포기한다.

 

2. 필사 모먼트

모래는 절대로 쉬지 않는다. 조용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지표를 뒤덮고 멸망시킨다...
유동하는 모래의 이미지는 그에게 뭐라 말할 수 없는 충격과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모래의 불모성은 흔히 말하듯 건조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끊임없는 흐름으로 인해 어떤 생물도 일체 받아들이지 못하는 점에 있는 것 같았다. 일 년 내내 매달려 있기만을 강요하는 현실의 답답함에 비하면 이 얼마나 신선한가. 
물론 모래는 생존에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면 정착은 과연 생존에 절대적으로 불가결한 것인가. 정착을 부득불 고집하기 때문에 저 끔찍스러운 경쟁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만약 정착을 포기하고 모래의 유동에 몸을 맡긴다면 경쟁도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사막에도 꽃은 피고 벌레와 짐승도 산다. 강한 적응력을 이용해 경쟁권 밖으로 벗어난 생물들이다. 예컨대 그의 길앞잡이과처럼...

소설 초반에 남자가 모래를 '신선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이유는 모래 마을에 붙잡히기 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과 주변 환경이 너무나 지루했고, 그것을 피해 온 휴가이기 때문에 미지의 세계에 대한 흥분과 동경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 무형의 파괴력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무엇 하나 없다... 어쩌면, 형태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야말로, 힘의 절대적인 표현이 아닐까...

모래의 힘 = 무형의 파괴력 

형태를 갖고 있지 않지만 엄청난 힘을 갖고 있는 모래는 사람으로 비유했을 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현대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선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무형의 지침, 눈치, 그리고 일...

 

회색 종족은 자기 이외의 인간이 빨강이든, 파랑이든 초록이든, 회색 이외의 색을 지녔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 없는 자기혐오에 빠진다. 눈부신 태양으로 충만한 여름은 결국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현실은 담배 냄새가 풀풀 나는 신문의 정치란을 깔고 뒹구는 얌전한 소시민의 일요일... 뚜껑에 자석이 붙어 있는 보온병과 캔 주스... 줄 서서 간신히 차지한 시간당 150엔짜리 대여 보트와 물고기의 사체가 뿜어내는 바닷가의 납빛 거품... 그리고 마지막은 피로에 절어서 타는 만원 전철... 모두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저 자기 자신을 사기에 걸려든 어리숙한 인간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탓에 열심히 회색 캔버스에다 환상의 제전을 흉내 내는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보았던 시티팝이 흘러나오는 배경을 보듯, 도시의 여름 풍경이 너무 잘 묘사되어 있다. 

 

기회는 저 멀리로 사라지고 말았다. 새삼스럽게 그런 가능성에 매달려 봐야 기대라는 자가 중독에 걸려 고통스러울 뿐이다. 지금은 누군가 문을 열어 주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 문을 비틀어 열고 힘으로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 이제는 어떤 주저도 구실이 될 수 없다.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퇴사를 하고도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던 내게 의미 깊은 문장이었다.)

 

내용물을 알 수 없는 짐은 호기심이란 방아쇠가 달려 있는 폭약이다. 

 

과연 시간이 말처럼 뛰어가는 일은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손수레만큼 늦지도 않은 듯하다.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생각했던 것만큼의 저항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 변화의 원인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물 배급이 중단될까 봐 두려워서인가, 아니면 여자에 대한 자책감 때문인가, 아니면 또 노동 자체의 성격 때문일까? 노동에는 목적지 없이도 쉼 없이 도망쳐 가는 시간을 견디게 하는 인간의 기댈 언덕 같은 것이 있는 듯하다. 
"노동을 극복하는 길은 노동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노동 자체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으로 노동을 극복하는... 그 자기부정의 에너지야말로 진정한 노동의 가치입니다."

나 역시 막상 퇴사를 하고 보니 생각했던 것만큼의 해방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 외에 딱히 큰 변화는 없다. 오히려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이 더욱 무겁게 느껴지고, 혼자서만 그 시간을 더 꾹꾹 눌러 밟으며 크고 작은 괴로움과 마주하는 것이 더욱 느껴질 뿐이다. 

역시 사람은 '노동'을 통해 시간을 견디고, 노동을 극복하는 것이 맞나 보다. 

 

소름 끼치도록 완벽한 반복... 그것이 심장의 고동처럼 생존에 불가결한 반복이라 할지라도, 심장의 고동만이 생존의 모든 것이 아닌 것 또한 사실이다.
불현듯, 새벽빛 슬픔이 북받친다... 서로 상처를 핥아 주는 것도 좋겠지. 그러나 영원히 낫지 않을 상처를 영원히 핥고 있는다면, 끝내는 혓바닥이 마모되어 버리지 않을까? 
"납득이 안 갔어... 어차피 인생이란 일일이 납득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만 저 생활과 이 생활이 있는데, 저쪽이 조금 낫게 보이기도 하고... 이대로 살아간다면, 그래서 어쩔 거냐는 생각이 가장 견딜 수 없어... 어떤 생활이든 해답이야 없을 게 뻔하지만... 뭐 조금이라도 마음을 달래 줄 수 있는 것이 많은 쪽이 왠지 좋을 듯한 기분이 들거든..."

이곳에 있을 땐 저곳이 더 나아 보이고, 저곳에 있을 땐 원래 있던 곳이 나아 보이는 것은 인간의 심리에 공통된 형상인 것인가 보다. 이곳이든, 저곳이든 어느 쪽이 더 자유롭고 행복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변화를 주저하고,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려는 모습을 보인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흡도 보행도 내장의 꿈틀거림도 하루하루의 계획표도 이레마다 돌아오는 일요일도 넉 달마다 반복되는 기말고사도 그를 안심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새로운 반복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중략) 남자가 끝없이 되풀이되는 모래와의 투쟁과 일과가 된 수작업에 미미한 충족감을 느낀다고 해서, 반드시 자학이락만은 할 수 없다. 그렇게 쾌유되는 방식이 있다고 해서 딱히 이상할 것도 없으니까.
잎이 팔랑팔랑 흔들리는 나무... 도망치고 싶어도, 가지와 연결되어 있어 도망치지 못하고 팔랑팔랑 몸부림치는 잎사귀의 무리...
아, 좀 더 가벼운 공기가 필요하다! 최소한 자기가 토해 낸 숨이 섞여 있지 않은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다! 
하루에 한 번, 30분이라도 좋으니까 벼랑에 올라가 바다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그 정도는 허락되어도 좋지 않은가. 

3. 완독 소감

필사 모먼트에서도 느낄 수 있듯, 남자는 모래 밖의 세상에서 살던 때의 생각과 모래 안으로 들어와 정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의 생각이 매우 다르다. 번역가의 해석을 빌리자면, 작가 아베 코보는 모래의 여인이라는 작품을 통해 항상 다른 세계를 동경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 것이라고 한다.

내가 동경하던 곳을 찾아 밖으로 나가면, 어느샌가 원래 있던 안쪽이 다시 동경의 대상이 되고, 그래서 원래자리로 또 돌아가면 다시 밖의 모습을 동경하는 것. 결국 더 나은, 더 행복한 다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 당신이 있는 곳, 바로 여기가 다른 세계이자 동경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했던 것이다. 독특한 배경 설정과 엄청난 몰입감을 준 책, '모래의 여인'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