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쿠 추천: 지금 하루하루가 답답하고 의욕이 없다면, 자기 계발서로 억지로 힘내고 싶진 않지만 뭔가는 해야 할 것 같다면, 이 책을 꼭 추천!
언젠가 트위터를 통해서 이런 글을 스쳐지나가듯 본 적이 있다.
가끔 아무 이유 없이 짜증이 나고 삶이 지루하고 의미 없이 납작해진다는 느낌이 들면 책을 오랫동안 읽지 않았다는 신호다. 그럴 때는 굶은 사람처럼 활자를 찾아 읽어야 삶에 윤기가 돈다. 읽어야 하기 때문에 읽는 문장 말고 가볍게 그냥 읽고 싶어서 읽는 문장이 필요할 때다.
-트위터 eomju-
한창 새벽까지 야근을 하면서 점점 몸은 무기력해지고 기계처럼 몸만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 들 때, 나는 그때를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면 자존감도, 우울감도 한없이 저기 지하 동굴로 곤두박질치는 유형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의욕적인 하루를 살아보고자 무엇이라도 찾아서 읽는 편인데 그럴 때 보통 출퇴근길에 전자책을 읽곤 한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역시 출근길에 전자책으로 만났다. 무의식적으로 '밤 12시, 죽기 바로 전에만 열리는 마법의 도서관에서 인생의 두 번째 기회를 드립니다.'라는 카피가 구매하기 버튼을 눌렀던 것 같다. 덕분에 나는 이 책의 주인공을 따라 출근길에도, 퇴근길에도 나의 또 다른 삶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1. 간략한 줄거리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인생과 우울증으로 괴로워 하던 노라는 자살을 결심하고 약을 먹는다. 그 순간 노라의 몸은 생과 사의 경계에 있는 자정 도서관으로 이동해 있고, 그곳에서 어릴 적 학교 도서관 사서이자 함께 체스를 두곤 했던 엘름부인을 만난다. 자정 도서관에는 노라의 후회와 그녀가 다른 선택을 했을 때 살아볼 수 있는 또 다른 인생이 담긴 책이 꽂혀있다. 노라는 그 책들의 첫 줄을 읽음으로써 시공간을 초월해 자신의 다른 삶을 경험하게 된다. 총 8번의 다른 삶을 살아본 노라, 그녀는 결국 깨고 싶지 않은 꿈의 삶을 경험하지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순간 자정 도서관은 무너져 사라지고, 본래의 삶으로 돌아오게 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딱 하나, 노라의 마음만 새롭게 변한채로.
2. 필사 모먼트
"네 문제는 무대 공포증이 아닌 거 같아. 결혼 공포증도 아니고. 그냥 인생 공포증이야."
무대 공포증, 결혼 공포증 외 그 어떤 공포증보다 무서운 것이 인생 공포증이 아닐까 생각한다.
노라는 삶의 목적을,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하다못해 이틀 전처럼 배너지 씨를 대신해 약국에서 약을 타오는 사소한 목적조차 없었다. 노라는 노숙자에게 돈을 주려다가 돈이 한 푼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기운 내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지나가던 사람이 노라의 근심 어린 얼굴을 보며 말했다.
평생 아무 일도 없었어. 그게 문제야. 노라는 생각했다.
노라가 자살을 결심하기 몇 시간 전, 삶의 목적과 존재의 이유를 찾고 싶어 한다는 것은 그만큼 죽고 싶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모두 내 삶의 목적과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무의식적으로 찾고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더 나아가 그 일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몸소 느낌으로써 존재의 이유를 느낀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을 무렵, 일은 쉼 없이 계속하고 있었지만 하루하루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보단 무언가를 대체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퇴사했나 보다..)
"왜냐하면 노라, 때로는 살아봐야만 배울 수 있으니까."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무르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잊어버린다. 경도와 위도가 얼마나 긴지 무감각해진다. 한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광활한지 깨닫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일 거라고 노라는 짐작했다. 하지만 일단 그 광활함을 알아차리고 나면, 무언가로 인해 그 광활함이 드러나면, 당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희망이 생기고 그것은 고집스럽게 당신에게 달라붙는다. 이끼가 바위에 달라붙듯이.
노라는 어릴 적 북극을 탐험 연구원이 되고 싶다는 꿈을 꿨다고 한다. 그때 자신이 포기했었던 꿈에 대한 후회의 책을 열자 그녀는 단숨에 북극에 도착했다. 하지만 마냥 행복하기는커녕, 북극곰으로 부터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된다.
만약 실제로 그녀가 북극 탐험의 꿈을 이루었다면, 자신이 삶을 놓아버리는 선택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삶에서 노라는 살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느낀다. 이미 다른 삶을 겪어봤기 때문에, 더 나은 삶이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이번 삶은 두말할 나위 없이 힘들었다. 현재 기온은 영하 17도였고, 하마터면 곰에게 잡아먹힐 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래 삶에서는 사는 게 너무 단조로워서 문제였다. 노라는 평범하고 실망스러운 삶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믿게 되었다. 정말로 노라는 자신의 집안이 오랫동안 대대로 후회와 꺾인 희망을 반복해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모든 삶이 다 그럴지도 모른다. 겉보기에는 아주 흥미진진하거나 가치 있어 보이는 삶조차 결국에는 그런 기분이 들지 모른다. 실망과 단조로움과 마음의 상처와 경쟁만 한가득이고, 아름답고 경이로운 경험은 순간에 끝난다. 어쩌면 그것만이 중요한 의미인지 모른다. 세상이 되어 세상을 지켜보는 것. 부모님이 불행했던 이유는 무언가를 성취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성취하겠다는 기대를 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노라는 이런 것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이 배에서 깨달았다. 자신이 생각보다 부모님을 훨씬 더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순간 노라는 두 사람을 완전히 용서했다.
새로운 진로를 선택하고 대학에 편입했을 때 나는 아주 흥미진진한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매일 통통 튀는 아이디어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브랜드 콘텐츠를 기획해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미래였다. 겉보기엔 아주 흥미진진하고 가치 있어 보이는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사회에 나와보니 달랐다. 고객사의 요구사항에 맞추느라 내가 원했던 결과물에서는 점점 멀어지기만 하고, 의미 없이 사라지는 아이디어들만 수십 개가 넘어가면서 항상 실망했다. 어느 순간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을 겁내게 되고, '그들은 이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박혀 업무를 단조롭게 만들고 있었다. 내가 성취할 수 있는 역량은 50프로인데, 100퍼센트 이상의 성취 기대를 품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하지만 삶의 의미만 찾다가는 제대로 살지 못할 겁니다."
"슬픔 없이 행복을 얻을 수는 없어요. 물론 사람마다 그 정도와 양이 다르긴 하겠죠. 하지만 영원히 순수한 행복에만 머물 수 있는 삼은 없어요. 그런 삶이 있다고 생각하면, 현재의 삶이 더 불행하게 느껴질 뿐이죠."
퇴사를 하고, 다시 이 책을 읽은 지금 가장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다.
내 인생의 목적과 성취감, 삶의 의미에만 집중하다가는 더 좋은 것, 더 나은 것을 찾느라 지금에 집중하지 못하고 말 것이다.
경기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넌 그걸 깨달아야 해.
체스판에 폰이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경기는 끝난 게 아니야. 한 사람은 폰 하나와 킹 하나만 남고, 다른 사람은 기물이 다 있어도 경기는 아직 진행 중인 거야. 설사 네가 폰이라고 해도, 아마 우리 모두 그럴 테지만, 넌 폰이 가장 마법 같은 기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해. 폰은 하찮고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왜냐하면 폰은 절대 그냥 폰이 아니니까. 폰은 차기 퀸이야. 넌 그저 계속 앞으로 나아갈 방법만 찾으면 돼. 한 칸 한 칸 앞으로 나아가는 거야. 그러다 반대편 끝에 도달하면 얼마든지 다른 기물로 승급할 수 있어."
"가장 평범해 보이는 게 나중에는 널 승리로 이끄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야. 넌 계속 나아가야 해. 그날 강에서처럼. 기억하니?"
매일매일 지겨운 일상의 반복도 의미 없지 않다는 것. 이것이 어쩌면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열쇠인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전전긍긍하는 건 그만둬야 할지 몰라. 노라"
"전 그냥 삶을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삶을 이해할 필요 없다. 그냥 살면 돼"
3. 완독 소감
삶이 무기력하거나 격려가 필요할 때 에세이 책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무작정 괜찮다고 말해주는 에세이를 잘 읽지 않는 편이라서 미드나잇 라이브러리가 더 철학책처럼 느껴졌다. '선택의 순간들을 모아두면 그게 삶이고 인생이 되는 거라고 했던 미생의 한 대사처럼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노라의 여덟 번의 삶을 통해 과거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너의 인생 또한 충분히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나는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매번 체감하고 싶어 하고, 정체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 자주 리셋을 해버리곤 한다. 리셋을 하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할 때마다 '나는 도대체 몇 번째 터널에 들어가는 거지?'라고 의문을 가진다. 아마도 내가 선택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가 지속적으로 리셋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겠지.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읽고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엘름부인'이 준 가르침대로 지루한 듯 평범한 하루하루에 정성을 다하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것이다. 나의 삶에 대해 적당한 탐구는 필요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이해하려고, 너무 깊은 목적을 찾으려고 억지로 노력하는 것도 그만둬야겠다. 단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과거보단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고 살아가야겠다. 이것이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의 작가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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