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쿠 추천: 슥슥 넘어가는 책장과 함께 머릿속에는 청파동의 한 편의점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힐링 북
p.s) 독고 아저씨 말투 답답함 주의
'불편한 편의점'은 벚꽃이 흩날리는 아늑한 동네, 어딘가 있을 것만 같은 편의점을 그려놓은 표지가 눈에 띄는 책이다.
한참 동안 베스트셀러에서 내려오지 않아서 궁금했던 찰나에 2편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e-book으로 구매해 읽었다. 간간이 보이는 리뷰를 보며 이 책 역시 힐링소설이라는 점을 짐작했다. 지금까지 읽어왔던 힐링물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펼친 '불편한 편의점'은 생각 외로 특별히 다른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집 옆에서도 일어날 것 만 같은 아주 친근하고 사실적인 소재를 다뤘다는 점이다. 책을 읽고 나면, 표지에 그려진 편의점의 모습보다 자주 봐왔던 편의점의 모습이 떠오를 정도로 말이다. 올해 4월부터 대학로에서는 이 책을 모티브로 연극도 한다고 하는데,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보러 가고 싶을 만큼 마음이 따뜻해지고 미소가 번지는 스토리였다. 하지만 무엇이든 1편이 너~무 좋으면 2편은 손대기가 쉽지 않은 법...! 2편은 아주 먼 훗날 도서관에서 빌려서 봐야겠다.
1. 간략한 줄거리
이야기는 서울역에서 지방으로 가던 중 지갑을 잃어버린 편의점 사장 '염 여사' 그리고 그 지갑을 주워서 필사적으로 지키며 염 여사에게 찾아준 노숙자 '독고'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염 여사는 노숙자임에도 자신의 지갑을 찾아준 독고에게 감사의 표시로 청파동에 있는 자신의 편의점으로 데려가 '산해진미'도시락을 주고,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준다. 독고는 노숙자로 있었던 지저분한 차림새를 벗어던지고 말끔한 모습으로 편의점 알바생인 시현에게 일을 배운다. 독고는 말도 행동도 느리지만 성실하게 일을 배우며 자연스럽게 시현과 가까워지고, 시현 역시 독고를 통해서 자신이 잘하는 것을 찾아 새로운 진로로 나아가게 된다. 독고는 이외 다른 파트타임 알바 오여사, 자주 물건을 사러 오는 아이들은 물론, 40대 남자 손님, 잠시 청파동으로 이사 온 작가와도 연을 맺으며 인생을 보는 새로운 생각과 따듯한 정을 주고받는다.
어느덧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게 될 무렵 독고는 작가의 도움으로 자신의 기억을 차츰 찾게 되고, 삶에 대한 반성과 함께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느리고, 답답한 독고, 어떻게 보면 손님이 불편한 편의점이지만, 사실은 불편보단 언제나 '네(손님) 편'에 가까운 따뜻한 이야기이다.
2. 필사 모먼트
시현은 개인의 꿈이 외교 문제로 무너지는 경험을 하자 비로소 자신이 사회의 일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촛불을 들거나 축구를 응원하려고 광장에 나가는 사람들과는 자신이 전혀 다른 부류라고 느꼈다.
떄론 공무원이 되는 것보다 편의점 알바생의 삶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힘들게 공무원이 되어봤자 결국 좀 더 큰 편의점이 아닐까? 국민의 편의점을 봐주는 공간에서 또 다른 제이에스들을 만나는 삶... 그렇기에 지금 이 익숙한 공간은 시현에게 있어 반드시 지켜야 할 보금자리였다.
시현은 세상이 정해놓은 '좋은 길'을 가기 위해 노력하는 요즘 세대의 모습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다.
끊임없는 공부와 시험, 그리고 더 좋은 직장을 가기 위해 스펙 쌓기에 급급했던 우리. 사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누구를 위한 길인지, 정말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길인지 확실하게 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옛날에 한 기사에서 일본에 프리터 족이 늘어나고 있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친구들과 '나쁘지 않은데?', '오히려 아르바이트하면서 시간을 활용하고 자유롭게 사는 것도 좋겠다.'라는 말을 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프리터 족의 길을 걷지 못했다.
그녀는 어제도 유튜브 영상을 찍으며 독고 씨를 생각했다. 그에게 가르쳐주듯 차분히, 천천히, 말하고 움직였다. 어쩌면 노숙자같은 사람들을 도울 방법은 그렇게 좀 더 느리게, 천천히 다가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니 아무런 사회와의 끈도 없다고 느끼던 자발적 아싸인 자신이 무언가 연결점을 찾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녀 역시 독고 씨에게 도움을 받은 셈이었다.
독고씨는 그동안 짜몽이란 녀석을 챙겨줬겠지. 그러기에 저 불량한 녁석이 두말 않고 그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고... 선숙 역시 미간이 뻐근하긴 하지만 좀처럼 누굴 봐주는 적이 없는 자신에게 생긴 변화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한마디로 기분이 좋아졌다.
'불편한 편의점'의 주인공 독고씨는 자신도 알게 모르게 상대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변화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모든 기억을 리셋해 버린 탓인지) 상대를 바라볼 때 편견 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보고 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어린 밥 딜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그리고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고."
맞아. 친절하자. 나도, 친구들도, 그리고 우연히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도 각자가 힘든 싸움을 하고 있을테니.
뭐니 뭐니 해도 상대가 나로 인해 편안함을 느끼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찐 행복일 테니.
인생은 원래 문제 해결의 연속이니까요.
그리고 어차피 풀어야 할 문제라면, 그나마 괜찮은 문제를 고르려고 노력할 따름이고요.
"가족들에게 평생 모질게 굴었네. 너무 후회가 돼. 이제 만나더라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
"손님한테 하듯...... 하세요. 손님한테.... 친절하게 하시던데....
가족한테도.... 손님한테 하듯 하세요. 그럼... 될 겁니다."
"손님에 게라..... 그렇군. 여기서 접객을 더 배워야겠네."
가족에게 어떻게 대할 지 모르겠다면 손님에게 대하듯 하라는 독고씨의 말이 가장 인상 깊었다.
손님은 아무리 귀찮아도, 진상이라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게 된다.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손님 대하듯 귀하게, 화가 날 땐 귀하게 못 대하겠지만...? 최소한 손님에게 갖추었던 예의를 지키며 대해야겠다.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니까 조용해졌어."
"그러네요."
"다들 너무 자기 말만 하잖아. 세상이 중학교 교실도 아니고 모두 잘난 척 아는 척 떠들며 살아. 그래서 지구가 인간들 함구하게 하려고 이 역병을 뿌린 거 같아."
다리에 올라 몸을 던지려 했다. 실패했다.
사실 올 결울 편의점에서 보내고 나면 마포대교 혹은 원효대교에서 뛰어내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강은 빠지는 곳이 아니라 건너가는 곳임을.
다리는 건너는 곳이지 뛰어내리는 곳이 아님을.
인생에 실패했다고 느끼며 막다른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던 독고의 독백.
3. 완독 소감
오랫동안 베스트 셀러로 등극해 있었던 책답게 남녀노소 모두가 읽기 좋은 책이다. 염여사의 시각, 알바생 시현과 오 여사의 시각, 그리고 편의점을 매일 찾던 40대 장년, 젊은 작가의 시각이 각각 담겨 있어 독고라는 인물을 좀 더 다양하게 볼 수 있었다. 뿐 만 아니라 실제로 존재할 법한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로 묶여 있기에 더욱 몰입감과 공감을 느끼며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되면 더 집중하기 때문이 아닐까.
무엇보다도 '불편한 편의점'은 사람에 대한 편견을 조금이라도 없앨 수 있었던, 그리고 사람을 좀 더 따듯하게 바라 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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